
더지엠뉴스 김평화 기자 | 중국은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아 전국 31개 성·시·자치구에서 대규모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항일전쟁기념관이라는 공간이 있다.
현재 중국 전역에는 크고 작은 항일기념관이 500곳 이상 존재하며, 이는 단순한 유적지 보존을 넘어 국가적 정체성과 민족 통합의 상징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념관은 베이징(北京, Beijing)의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中国人民抗日战争纪念馆, Zhongguo Renmin Kangri Zhanzheng Jinianguan)’이다.
이곳은 루거우차오(盧溝橋, Lugouqiao) 인근에 위치한 항일전쟁 발발의 현장에 세워졌으며, 중국공산당이 주도한 항전 서사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전시관은 마오쩌둥(毛泽东, Mao Zedong)의 전략 지도, 팔로군(八路军, Balu Jun)과 신사군(新四军, Xinsijun)의 전투 장면, 민중의 참여 등으로 구성되며, 항일 전쟁을 '전 인민의 항전'으로 재현한다.
동북3성 지역에는 지역별 항전의 기억을 담은 기념관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지린성(吉林省, Jilin Sheng)의 퉁화(通化, Tonghua)에는 ‘동북항일연군기념관(东北抗联纪念馆, Dongbei Kanglian Jinianguan)’이 위치해 있다.
이곳은 양정우(杨靖宇, Yang Jingyu) 장군의 투쟁과 민중 유격대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전시하며, 일본군의 동북 진출에 맞서 싸운 지방항전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헤이룽장(黑龙江, Heilongjiang)성 하얼빈(哈尔滨, Haerbin)에는 ‘731부대 죄증진열관(731部队罪证陈列馆, 731 Budui Zuizheng Chenlieguan)’이 있어, 전쟁 중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

상하이(上海, Shanghai)는 대도시 항전의 기념 방식을 보여준다.
상하이전쟁기념관(淞沪抗战纪念馆, Songhu Kangzhan Jinianguan)은 1937년 상하이 전투(淞沪会战, Songhu Huizhan)를 중심으로 한 정규전 기록을 담고 있으며, 전시 구조는 시민들의 참여와 병사들의 일기, 실제 무기와 탄환이 포함된 체험형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 기념관은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으며, 상하이시 교육국은 이곳을 ‘청소년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지정하고 있다.
남방 지역에서는 후방기지와 정부 기능을 상징하는 충칭(重庆, Chongqing)이 중심이다.
충칭은 항전 수도였던 역사를 바탕으로, ‘중경항일폭격기념관(重庆大轰炸遗址纪念馆, Chongqing Dahongzha Yizhi Jinianguan)’과 ‘국민정부 행정원 구청사(国民政府行政院旧址, Guomin Zhengfu Xingzhengyuan Jiuzhi)’를 전시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 공간은 단순한 폭격 피해 기록이 아니라, 중국의 행정체계와 외교 전선이 전시 중에도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활용된다.
항일기념관들은 도시의 역사와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핵심 자산이 되고 있다.
광시(广西, Guangxi)의 류저우(柳州, Liuzhou), 후난(湖南, Hunan)의 헝양(衡阳, Hengyang) 등 지방 도시도 각각 항전 유적을 기반으로 독립적인 기념관을 설립하고 있으며, 지방 정부의 주도로 전시관 리뉴얼과 디지털 기록화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2025년 들어 중국국가지리정보센터와 문물국은 공동으로 ‘항일기념관 디지털지도’를 완성해 공개했으며, 4D 전투 재현 영상과 실시간 해설을 결합한 온라인 아카이브도 확장되고 있다.
이는 항일기억을 단지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체험 가능한 역사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중국공산당 중앙당교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항일기념관은 단지 전쟁을 기억하는 공간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중국을 단결시키는 공공기억의 플랫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공간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국가의 위기 극복과 공동체 형성의 과정을 생생히 가르쳐주는 교실이자, 중화민족 전체가 공유하는 정신적 고향”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항일기념관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억을 생산하고 있다.
공간은 말이 없지만, 전시의 순서와 구조, 해설자의 언어와 관람객의 반응은 기억이 어떻게 현재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항일전쟁 80주년, 그 기억은 단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오늘날 중국의 단결과 자긍심을 구성하는 살아 있는 서사로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