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지엠뉴스-차이나데일리] 중국이 일본의 전면 침략에 맞서 8년간 지속한 항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가능케 한 중요한 기반이 되었지만, 서방에서는 여전히 그 공로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11일 영국 런던에서 활동 중인 역사학자 라나 미터(Rana Mitter)는 중국이 동아시아 전선에서 핵심 축으로 싸운 사실이 국제사회에 과소평가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이 역사적 망각이 오늘날 국제 질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미터는 저서 『잊힌 동맹국: 중국의 제2차 세계대전, 1937~1945(Forgotten Ally: China's World War II, 1937–1945)』에서 일본의 침략에 저항한 중국의 전쟁이 단지 지역 분쟁이 아니라 세계 전체에 전략적 함의를 가졌다고 강조한다.
그는 “많은 이들이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기억하지만, 사실상 중국은 1937년부터 이미 전면적인 전쟁에 돌입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시각 차이가 중국의 기여를 역사적 주변부로 밀어낸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전쟁의 발단은 1931년 9월 1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관동군은 선양(沈阳, Shenyang) 근처 류탸오후(柳条湖, Liutiaohu) 지역의 철로 일부를 스스로 폭파한 후, 이를 중국군의 소행으로 조작해 도시를 공격했고, 이를 계기로 동북 3성 전체를 점령했다. 이는 중국 대륙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본격적인 침략 신호탄이었다.
이후 1937년 7월 7일, 베이징 인근 루거우차오(卢沟桥, Lugouqiao)에서 일본군이 중국군을 공격하면서 양국 간 전면전이 개시됐다. 이 전투는 중국이 국가 전체를 동원한 저항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 전쟁 구도의 균형추에 변화를 초래했다.
미터는 특히 1938년을 전쟁의 분기점으로 보았다. “당시 중국은 일본과 협상을 통해 전쟁을 멈추고, 굴욕적인 평화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거부하고 끝까지 저항하기로 선택했다”며 “만약 그때 중국이 항복했다면, 일본은 중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이후 소련, 동남아, 인도까지 전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중국의 항전이 단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인 요소였다고 강조했다.
전쟁의 참상도 서방에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1940~41년 독일의 런던 대공습(Blitz)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과 달리, 1938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군이 중국의 임시 수도 충칭(重庆, Chongqing)과 그 인근 지역을 대상으로 벌인 장기적 공습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미터는 “많은 이들이 중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는지조차 모르며, 알고 있더라도 부차적 전장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서문에서 “중국의 역할은 역사적 지엽으로 치부되며, 주요 강대국들의 역할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방식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항전은 단순한 전투나 외세 저항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미터는 “전쟁은 중국 사회 전반에 걸쳐 구조적 변화를 일으켰고, 정치제도와 문화, 사회적 가치관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책을 준비하는 데 10년 이상을 투자했으며, 전투 기록뿐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변화된 중국인의 생활과 제도, 지역 공동체의 적응 양식 등을 함께 분석함으로써 보다 입체적인 전쟁사를 재구성했다.
오늘날 동아시아가 수십 년간 전면전 없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과거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미터는 말한다. 그는 “전쟁은 삶의 모든 기반을 무너뜨린다. 평화는 우연히 찾아오지 않는다. 협상과 타협, 다자간 제도 구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중국의 전쟁 경험은 이를 입증하는 강력한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후 변화 대응, 세계 경제 안정, 무역 회복 등을 위해서라도 지역 분쟁을 협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갈등의 해결은 무력 충돌이 아닌 외교와 대화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교훈을 과거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항전은 단지 잊힌 역사로 남아서는 안 된다. 미터는 “당시 중국의 저항은 단순히 자국을 위한 투쟁이 아니었다. 세계 평화를 지키는 전선의 한 축이었고, 지금도 그 기억은 재조명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세월이 흐르며 전쟁 세대가 사라지는 지금이야말로, 동서양이 함께 파시즘에 맞서 싸웠던 공동의 기억을 되살려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