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지엠뉴스] 2025년, 중국은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아 전국적인 기념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체성을 구축한 주요 역사로서 항일전쟁은 매년 반복되는 기념일이지만, 올해는 특히 여성들의 투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전 인민 항전’이라는 역사 서사 속에서, 지금껏 그림자에 가려졌던 여성 전사들의 존재가 중국 전역에서 다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언론은 최근 항일전쟁 당시 여성들이 수행했던 전투, 정보, 후방지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발굴해 소개하고 있다. 런민르바오(人民日报)는 지난달 특별 기획면을 통해 “총을 든 여인들, 붉은 피로 적어낸 역사”라는 제목으로 여성 항일투사 12명의 삶을 조명했다. 여기에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활동한 빨치산 여성들, 상하이에서 첩보 임무를 수행한 여성 정보원, 남부 후방에서 부상병을 돌본 의료 여성들의 기록이 총망라됐다. 1930년대 후반 헤이룽장(黑龙江, Heilongjiang)과 지린(吉林, Jilin) 지역을 무대로 결성된 ‘둥베이항일녀전사대(东北抗日女战士队)’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산림지대를 은신처 삼아 일본군 수송로를 차단하고, 기차를 습격하고, 적 군수품을 빼돌리
[더지엠뉴스] 2025년, 중국은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아 전국적인 기념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체성을 구축한 주요 역사로서 항일전쟁은 매년 반복되는 기념일이지만, 올해는 특히 여성들의 투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전 인민 항전’이라는 역사 서사 속에서, 지금껏 그림자에 가려졌던 여성 전사들의 존재가 중국 전역에서 다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언론은 최근 항일전쟁 당시 여성들이 수행했던 전투, 정보, 후방지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발굴해 소개하고 있다. 런민르바오(人民日报)는 지난달 특별 기획면을 통해 “총을 든 여인들, 붉은 피로 적어낸 역사”라는 제목으로 여성 항일투사 12명의 삶을 조명했다. 여기에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활동한 빨치산 여성들, 상하이에서 첩보 임무를 수행한 여성 정보원, 남부 후방에서 부상병을 돌본 의료 여성들의 기록이 총망라됐다. 1930년대 후반 헤이룽장(黑龙江, Heilongjiang)과 지린(吉林, Jilin) 지역을 무대로 결성된 ‘둥베이항일녀전사대(东北抗日女战士队)’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산림지대를 은신처 삼아 일본군 수송로를 차단하고, 기차를 습격하고, 적 군수품을 빼돌리
[더지엠뉴스]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은 2025년, 중국 전역은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고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분위기로 물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번 기념사업을 단순한 추모 행위로 보지 않고, 민족정신과 국가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뤄양(洛阳, Luoyang), 창사(长沙, Changsha), 타이위안(太原, Taiyuan) 등 세 도시는 단순한 전투의 장소를 넘어 ‘기억의 거점’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뤄양은 중국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자, 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점령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1938년 일본군은 허난성에 대한 전면적 침공을 감행했고, 뤄양은 그 중심에 놓였다. 전투는 군사적 충돌을 넘어 도시 전체의 삶을 파괴했다. 당시 황하 일대 마을과 유적지는 폭격과 방화로 소실됐고, 수천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 학계는 이를 ‘문명에 대한 공격’이라 명명하며, 현재까지도 뤄양 항전기념관과 박물관을 통해 기억을 재구성하고 있다. 뤄양시 정부는 매년 9월 3일을 중심으로 대규모 추모식을 개최하며, 지방학교 교육과정에 항일전쟁 지역사 교육을 포함시키는 등 역사 전승에 힘을 쏟고 있다. 창사는 후난성의 중심지로서
[더지엠뉴스]항일전쟁의 기억은 단지 중국의 역사로만 남지 않는다.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 수많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땅을 무대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다. 그들은 단지 한국의 독립을 위한 투사들이 아니었다. 중국 국민들과 함께, 공동의 적을 향해 총을 들고 싸운 동지들이었다. 이들의 이름과 흔적은 오늘날 중국의 전쟁기념관과 역사자료 곳곳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김구(金九, Jīnjǐu) 선생이다. 그는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뒤 중국 정부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충칭(重庆, Chóngqìng)으로 이동한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군사조직 창설을 추진했다. 이 결과물이 바로 한국광복군이다. 광복군은 중국 육군참모학교에서 정규 군사교육을 받고 편성되었으며, 중국군과 공동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실제 전투에도 참여했다. 지청천(池靑天, Chíqīngtiān) 장군은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으로 활약하며, 중국군과의 연대 작전에 중심에 있었다. 그는 후난(湖南, Húnán)과 쓰촨(四川, Sìchuān) 일대를 중심으로 항일 전선을 구축했고, 중국군과
[더지엠뉴스] 항일전쟁(抗日战争)은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 중 하나로,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중국의 역사적 투쟁이다. 2025년은 항일전쟁 80주년이 되는 해로, 중국은 이 전쟁을 통해 국민의 단결과 민족적 자존심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중국 관영 매체와 정부는 항일전쟁의 주요 전투를 통해 역사 교육과 국민 단합을 독려하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중국이 기억하는 대표적인 10대 전투를 중심으로 그 역사적 의미와 오늘날 중국 사회에서의 해석을 살펴본다. 상하이 전투(淞沪会战, Songhu Battle) 상하이 전투는 1937년 8월 13일부터 11월 12일까지 약 3개월 동안 지속된 대규모 전투로, 중국군과 일본군이 상하이(上海, Shanghai) 지역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싸웠다. 상하이는 중국의 경제적 중심지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일본군은 상하이를 점령하여 중국을 압박하려 했고, 중국군은 이를 저지하려 했다. 처음에는 중국군이 일본군의 진격을 막아내며 강한 저항을 보였으나, 일본군은 해군과 공군을 동원해 강력한 공세를 펼쳤다. 특히 상하이 외곽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는 도심 전투로 이어지며 민간인 피해도 막대했다. 일본군의 현대적 무기와 강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