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지엠뉴스 이남희 기자 | 유럽 고고학자들이 벨기에의 한 동굴에서 발굴된 네안데르탈인 유골을 정밀 분석한 결과, 특정 집단의 여성과 어린이만을 노린 식인 행위의 흔적이 드러났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그 시기는 네안데르탈인이 쇠퇴하고 현생 인류가 북유럽에 진입하던 전환기로, 당시 집단 간 긴장과 폭력이 어떤 방식으로 약자를 덮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되고 있다.
26일 국제 연구진이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벨기에 남부 왈로니아 지역의 고예 동굴에서 출토된 네안데르탈인 집단 유해에는 동물 도살과 유사한 절단과 골절, 그리고 사람 뼈를 도구로 재활용한 흔적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었다.
고예 동굴은 북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 유해가 가장 많이 발견된 장소로, 수백 점에 달하는 뼈 조각이 여러 차례 발굴됐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제3 동굴에서 나온 101점의 뼈를 다시 모아 형태를 복원하고, 고유전학 분석을 통해 최소 6명의 개체가 존재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이들은 성인 또는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여성 4명, 남성으로 추정되는 청소년 1명, 그리고 신생아 수준의 남성 1명으로 구성돼 있었으며, 여성들은 평균적인 네안데르탈인 여성보다 체구가 작고 호리호리한 편이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연대 측정 결과 이 개체들은 약 4만 1000년에서 4만 5000년 전 사이에 살았던 이들로 확인됐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의 문화가 약해지고, 현생 인류가 북유럽에 도착해 서식 범위를 넓혀가던 시기와 겹친다.
연구진은 뼈 표면에 남은 미세 흔적을 3차원 영상과 고배율 사진으로 분석해, 단순한 자연 파손이 아닌 인위적인 처리의 증거를 분리해냈다.
인대를 떼어내고 살을 벗길 때 생기는 칼자국, 골수를 꺼내기 위해 뼈를 길게 쪼갠 파열 자국, 그리고 잘려 나간 뼛조각을 긁개나 송곳처럼 다시 사용한 흔적이 대거 확인됐다.
이러한 패턴은 네안데르탈인이 사냥한 동물 사체를 처리하는 방식과 유사했으며, 연구진은 시신 훼손이 의도적인 인육 섭취 과정의 일부였다고 해석했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이들이 동굴 주변에서 세대를 이어 생활한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뼈와 치아에 남은 스트론튬 등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한 결과, 이 여섯 명은 고예 동굴 주변 지형과 다른 환경에서 오랫동안 자랐고, 같은 지역에서 이동 범위가 제한된 채 생활해 온 이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유해가 발견된 동굴이 이들의 고향이 아니라는 뜻이며, 서로가 같은 출신지에서 온 구성원이라는 점만 공유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동물의 장거리 이동 흔적을 판별할 때 사용하는 골격 지표를 사람 뼈에도 적용했으나, 장기간에 걸친 광범위한 이동을 암시하는 특징은 찾아내지 못했다.
또 뼈 속 콜라겐에 축적된 황 동위원소 조성도 네안데르탈인 6명이 동일한 생태 환경에서 살아온 소속 집단의 구성원이었다는 쪽으로 수렴했다.
이러한 물증을 종합한 연구진은, 이번 사례가 공동체 안에서 죽은 식구를 처리하거나 의례적으로 일부를 먹는 내집단 식인이라기보다, 인접 지역의 다른 집단 구성원을 노린 외집단 식인에 가깝다고 해석했다.
프랑스 보르도 대학의 인류학자 퀀틴 코스네프로아 연구팀은 논문에서, 성인 또는 청소년 여성 네 명과 어린이 두 명이라는 조합 자체가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특정한 구성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인접 지역의 하나 혹은 여러 집단 가운데, 체구가 작고 방어력이 약한 구성원을 의도적으로 골라 공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 사이에서 누가 식인을 실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단정할 수 없는 대목으로 남았다.
현생 인류가 북유럽에 진입하던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두 종 사이의 갈등이나 경쟁 상황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유럽 구석기 유적 가운데 사람 뼈를 긁개나 도구로 재활용한 사례는 네안데르탈인 유적에서만 반복적으로 보고돼 왔고, 후기 구석기 현생 인류 거주지에서는 비슷한 사례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 함께 제시됐다.
연구진은 아울러 외집단 식인 풍습이 주로 집단 간 전쟁, 자원 경쟁, 혹은 경쟁 집단의 생식력을 약화시키려는 전략과 맞물려 등장했다는 인류학 연구들을 언급하며, 당시 유럽 전역에서 인구 구조와 서식 공간을 둘러싼 압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들은 이번 고예 동굴 분석이 네안데르탈인 집단이 어떤 방식으로 타 집단과 마주했고, 그 과정에서 폭력과 식인이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에 관한 새로운 단서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