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지엠뉴스 이남희 기자 | 중국과 유럽의 관계가 재편 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핀란드가 가장 먼저 방향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념과 가치 외교에 기대온 유럽이 실용과 다자 외교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서 중국과의 안정적 협력이 하나의 현실적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신호다.
26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총리는 전날 베이징에 도착해 나흘 일정의 공식 방문에 들어갔으며,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회담을 포함해 리창 국무원 총리,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각각 회동을 갖는다.
오르포 총리는 이번 방중에 20곳이 넘는 핀란드 기업 경영진을 동행했다. 기계·임업·혁신기술·청정에너지·식품 등 핀란드의 핵심 산업군이 대거 포함됐으며, 이는 단순한 외교 방문을 넘어 실질적 경제 협력 확대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과 핀란드의 관계는 중국 외교사에서 여러 차례 첫 사례를 만들어왔다. 핀란드는 서방 국가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하고 수교를 맺었으며, 서방 국가 최초로 중국과 정부 간 무역 협정을 체결한 나라다.
경제 분야에서도 양국의 연결성은 꾸준히 강화돼 왔다. 중국은 수년째 핀란드의 아시아 최대 교역 상대국이며, 핀란드는 중국의 북유럽 지역 세 번째 교역국으로 자리 잡았다.
인적·문화 교류 역시 양국 관계의 또 다른 축을 이룬다. 핀에어는 1988년 서방 국가 수도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첫 직항 노선을 개설했고, 2015년 이후 핀란드 내 중국 유학생 수는 러시아 유학생을 넘어 최대 외국인 유학생 집단이 됐다.
최근에는 양국 정상의 전략적 조율 아래 미래 지향적 협력 관계가 한층 구체화되고 있다. 오르포 총리의 이번 방문 기간 중 중국·핀란드 혁신 비즈니스 협력위원회 운영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 체결과 함께 복수의 기업 간 협력 계약도 예정돼 있다.
중국 상무부는 이번 일정을 두고 양국이 경제·무역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의지와 역량을 동시에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핀란드 측 역시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핀중국상공회의소 베이징지부 관계자는 중국이 여전히 핀란드 기업에 핵심 시장이며, 녹색에너지·혁신기술·헬스케어·스포츠 산업 등에서 상호 보완성이 높다고 밝혔다.
오르포 총리는 방중에 앞서 중국과의 대화가 규범 기반 질서와 무역 문제를 포함한 국제 현안 논의에서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중국은 핀란드 기업의 주요 수출 시장이자 유럽연합 전체로 보면 두 번째로 큰 교역 상대국이라는 점도 언급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방문의 배경으로 유럽을 둘러싼 대외 환경 변화를 지목한다. 유럽연합의 규제 강화와 미국의 일방적 관세 정책 속에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핀란드로서는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충격을 분산시키려는 필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핀란드가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대미 의존도를 낮추고 관세를 외교적 무기로 사용하는 리스크를 줄이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여기에 안보·외교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주요 강대국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으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평가다.
중국·핀란드 관계는 중국과 유럽연합 전체 관계에서도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핀란드가 보여온 실용적이고 균형 잡힌 대중 정책이 유럽 내 중국 인식에 일정한 완충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다.
최근 몇 달 사이 서방 지도자들의 방중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프랑스 대통령의 지난해 말 방문 이후 아일랜드 총리와 캐나다 총리가 잇따라 중국을 찾았고, 영국과 독일 정상의 방중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다보스포럼에서 캐나다 총리가 국제 질서의 균열을 언급하며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예로 든 점, 독일 차기 정부가 글로벌 환경 변화를 재평가하고 있다는 발언 역시 유럽 내부의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중국 전문가들은 현재의 중유럽 고위급 교류가 아직은 제스처를 보이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이념과 가치 중심 외교에서 실용과 다자 외교로의 이동이 선언적으로는 시작됐지만, 인식의 전환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중국은 유럽을 전략적 파트너로 바라보고 있으며 대립의 대상으로 설정한 적이 없다는 점을 유럽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느냐가 향후 관계의 방향을 좌우할 변수로 거론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