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지엠뉴스 송종환 기자 | 왕이(王毅, Wang Yi) 중국 외교부장이 파리를 찾았다. 프랑스 외무장관과 마주 앉은 그는 복잡한 세계 정세를 언급하며, "중국과 프랑스는 흔들리는 국제질서에서 책임 있는 축을 함께 지탱해야 한다"고 말했다.
6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 4일 왕이 부장은 파리에서 스테판 세주르네(Stephane Sejourne) 프랑스 외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중프 고위급 인문교류기제 제7차 회의를 공동 주재했다. 이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그는 외교, 통상, 인문, 다자 시스템 전반에 걸쳐 양국이 협력할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왕 부장은 무엇보다 ‘전략적 신뢰’와 ‘독립적 외교’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양국의 위상을 부각했다. 그는 “불안정한 시대일수록 책임 있는 국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며, 프랑스가 재차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인한 데 대해 직접적인 감사를 전했다.
경제 분야에선 다소 강한 어조도 나왔다. “일부 국가들이 경제 협력을 자국 우선주의와 안보 논리로 왜곡하고 있다”는 왕 부장의 발언은 미국의 경제정책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관세를 무기화하고 탈동조화(decoupling)를 강요하는 방식은 공급망 전체를 위협할 뿐”이라며, “프랑스와는 오히려 경제적 상호보완성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프랑스산 브랜디 수입과 관련한 갈등을 양국 간 협의를 통해 봉합했고, 이와 같은 기조를 첨단 산업과 녹색에너지 분야까지 확대하길 원하고 있다.
기술협력과 관련해서는 특히 인공지능(AI), 생명공학, 탄소중립 에너지 등에서 프랑스와의 공동 투자·개발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는 중국이 내세우는 '게임굴기' 전략과도 맞닿아 있으며, 프랑스를 유럽 내 전략 파트너로 삼겠다는 의중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문화와 청년 교류도 빠지지 않았다. 왕 부장은 “인문교류는 국가 간 신뢰의 가장 깊은 연결고리”라고 말하며, 중프 청년 사절단, 실습생 파견 프로그램, 지방정부 간 포럼 재개 등 다양한 사업을 나열했다. 그는 “문명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사람 사이 연결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교육과 관광 분야 교류를 ‘단기외교’가 아닌 ‘세대 외교’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다자주의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국제질서가 혼란스러울수록 유엔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강조한 그는, 중국과 프랑스가 앞으로 유엔 체제를 중심으로 한 다자협력 틀을 강화하겠다는 공동 의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80주년’과 ‘유엔 창설 80주년’이라는 해를 맞아, 다자외교의 복원 필요성을 강조한 맥락과 연결된다.
회담의 마지막 발언에서 왕 부장은 유럽연합과의 관계도 언급했다. “중국은 유럽통합을 일관되게 지지해왔다”며, “프랑스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이끌 수 있는 중심축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가 중유럽 수교 50주년임을 상기시키며, 양측이 무역·환경·기술 전반에서 보다 실질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이번 파리 회담은 중국이 유럽과의 관계를 전면 재정비하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미국과의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주요국과의 신뢰 복원이 시급하다는 외교적 메시지를, 왕이 부장은 정제된 언어 속에 명확히 담았다.
프랑스 외무부도 회담 직후 양국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문화·기술·지방정부 교류 확대에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