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지엠뉴스] 한국 외교가 다시 무게추 위에 섰다.
중국과 미국, 두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이 맞닥뜨린 선택의 순간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날 선 요구와 실질적 위협이 동시에 쏟아진 적은 드물다.
22일 현재,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자국 주도의 수출통제, 반도체 공급망 재편, AI·배터리 기술 규제 등에 동참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공급망 협력’이지만, 실상은 ‘대중국 고립’ 전략의 전위에 서라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단호하다. 한국이 특정 진영에 편향될 경우 ‘중대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공개적으로 발신해왔다. 사드(THAAD) 사태 이후 한국이 경험한 경제 보복과 사회적 반감은 아직도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 한국은 그 사이에서 외줄을 걷고 있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과 얽혀 있다.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말로 포장된 이 외교의 줄타기는 한때 성공적이었지만, 이제 더는 그 모호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은 더 이상 중간지대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태도고, 중국은 한국의 작은 움직임조차 민감하게 감시하고 있다. 외교의 회색지대는 좁아졌고, 선택의 기로는 날카로워졌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 외교가 특정 진영에 완전히 기울 수는 없다. 한국의 생존은 동맹의 논리와 시장의 논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며,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부품 등의 핵심 공급처이자 소비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운영 중인 중국 내 공장은 단순한 투자처가 아니라, 세계 반도체 생태계의 중요한 축이다.
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이자, 안보와 기술의 보루다. 첨단장비와 특허, 기준과 협력망의 절대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미국과의 협조는 현실적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해답은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복수의 전략에 있다. 사안별 접근, 기술별 분리, 지역별 협력이라는 전술적 자율성이야말로 지금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외교다.
실제로 한국은 반도체 공급망 협력에선 미국과 긴밀히 조율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직접적 압박은 피해왔다.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에서도 예외 조항을 확보해 시간과 유연성을 벌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일관된 대중국 배제는 없었다. 왕이(王毅, Wang Yi) 외교부장이 수차례 언급한 “한국은 동아시아의 중요한 파트너”라는 표현은, 중국이 여전히 한국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물론 이러한 외교는 피로하다. 때로는 모호하고, 때로는 양쪽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강대국 간 충돌이 격화되는 시대에, 자율성과 실리 외교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다.
국익은 누구 편에 서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서는 데서 비롯된다. 한국 외교는 그 좌표를 놓쳐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