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쟁 80주년] 도시마다 다른 기억…베이핑, 상하이, 충칭이 간직한 항전의 역사

  • 등록 2025.06.06 09: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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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항일의 전초기지였던 세 도시, 그 기억은 어떻게 오늘에 계승되고 있을까

 

더지엠뉴스 김평화 기자 |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아, 중국 전역의 도시들이 자국 역사에서의 항전 기억을 재조명하고 있다.

특히 베이핑(北平, 현재 베이징), 상하이(上海), 충칭(重庆) 세 도시는 각기 다른 전쟁 체험과 전략적 역할을 수행하며 항일 전선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37년 7월 7일 루거우차오(盧溝橋, 노구교) 사건은 베이핑에서 발생했다.

이 사건은 중일전쟁 발발의 기점이자, 중국 전체가 항전 체제로 진입하는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베이핑은 당시 국민당 정부의 북방 전략 거점이었으며, 사건 직후 일본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함락됐지만, 중국공산당은 이 지역을 항전의 정신적 출발점으로 삼았다.

 

오늘날 베이징은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中国人民抗日战争纪念馆)’을 중심으로 매년 수백 건의 교육·기념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루거우차오 인근 완핑성(宛平城)은 보존 상태가 우수한 전쟁 유적지로, 청소년과 당원 교육의 핵심 공간으로 활용된다.

중국 중앙TV(CCTV)는 2025년 항일 80주년을 맞아 ‘첫 번째 총성’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베이핑이 항전의 시작을 알린 도시”라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반면 상하이는 항일전쟁 초기 가장 치열한 전면전이 벌어진 곳이다.

1937년 8월 시작된 ‘상하이 전투(淞沪会战)’는 3개월 간 지속된 대규모 도시 전투로, 중국군이 전례 없는 희생을 감수하며 일본군에 맞선 항전의 상징으로 남았다.

이 전투에서 중국군은 무려 25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며, 도시의 거의 전부가 전장으로 변했다.

 

상하이는 전투에서 결국 후퇴했지만, 이 전쟁은 일본군이 중국을 ‘속전속결’로 점령하지 못하게 막은 결정적 계기였다.

오늘날 상하이는 ‘상하이 전쟁기념관’과 ‘항전열사기념비’를 통해 이 역사를 기리고 있다.

2025년 현재, 상하이시 정부는 중산공원 인근에 항전전사 8천여 명의 이름을 새긴 벽을 새롭게 조성하고 있으며, 항일 문화재를 중심으로 한 역사관광벨트도 개발 중이다.

 

세 번째 도시 충칭은 항일전쟁의 정치·외교 중심이었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국민당 정부의 임시수도가 된 충칭은, 중국 내후방의 중심이자 외교의 핵심 무대로 기능했다.

미국, 영국, 소련 등 연합국 외교관들이 주재하던 도시였고, 일본군의 중폭격에도 불구하고 행정과 외교를 지속한 상징적 공간이었다.

 

충칭은 일본군의 ‘중경 대폭격’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수도 기능을 유지했고, 수십만 시민이 지하 대피소에 살며 전쟁을 견뎠다.

이 때문에 충칭은 ‘불굴의 후방수도’로 불리며, 민중의 생존 의지와 정부의 통치 지속 능력을 함께 상징한다.

충칭 항일폭격피해기념관과 ‘항전군정문화공원’은 오늘날까지도 생생한 기억의 장소로 남아 있으며, 중학생의 체험학습 필수 코스가 되었다.

 

이 세 도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항일전쟁에 기여했고, 오늘날 그 기억을 지역적 정체성과 연결해 계승하고 있다.

베이징은 정신과 기원의 도시로, 상하이는 무력 항전의 전면 도시로, 충칭은 후방과 외교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 중앙당교 산하의 리수빈(李树彬) 연구원은 “중국의 항일전쟁은 하나의 전장이 아닌 도시 전체가 전선이 되는 인민전쟁이었다”며 “그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 역시 각 도시가 걸어온 항전의 궤적만큼 다양하고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중국공산당은 항일전쟁 80주년을 맞아 전국 50개 도시에서 기념 전시, 유적 복원,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등을 통해 도시별 전쟁기억을 체계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닌, 민족 공동체의 정체성을 도시 단위로 구체화하는 역사문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항일의 기억은 더 이상 중앙 정부의 서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도시마다, 거리마다, 이름 없는 시민들의 항전이 새겨진 이 기억은 오늘의 중국을 구성하는 실질적인 토대가 되고 있다.

 

김평화 기자 peace@theg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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